장로교단 소속 성도님들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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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 note_color=”#f9fedf” text_color=”#333333″ radius=”15″]그 동안 한국교계를쭈욱 지켜보면서 이 나라를 향한 하나님의 갈망이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해 보기 위해 이 글을 쓰기로 했습니다. 선교사들을 통해 이 땅에 복음이 전해진 후, 믿음의 선진들의 헌신과 수고로 지금은 약 900만 명의 ‘기독교인들’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중에 60-70%가 장로교인이라는 통계가 있습니다. 샤머니즘과 우상과 불신자들로 충만하던 ‘영적 불모지’였던 이 나라에 이 정도의 복음이 전해진 데는 분명히 장로교인들의 기여도가 큽니다. 주님께 신실했던 장로교인들에게 그 날에 돌아갈 상급이 반드시 있을 것입니다. 물론 다른 교파 소속 성도들의 수고도 있었지요.

하나 뿐인 목숨은 누구에게나 다 소중합니다. 그 소중한 목숨을 주님께 바쳐 순교한 주 기철, 손 양원 목사님 등등 수많은 장로교인들의 신앙심을 우리 모두는 본받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이유로도 순교자들의 고귀한 희생을 과소평가해서는 안됩니다. 또한 장로교파 안에는 신학을 정식으로 배우지는 않았지만 늘 말씀과 기도 안에서 믿는 자녀들을 키워 낸 수많은 어머니들이 계십니다. 그리고 쏟아지는 잠을 떨쳐버리고 새벽부터 일어나 주님의 면전에 나아가 기도하며 찬송하는 수많은 이름 없는 성도들이 계십니다. 교파의 구분을 떠나 이러한 신실한 성도들의 헌신이 한국교회들이 지금까지 간증을 지켜온 뿌리요 기초라고 생각합니다.

절대 다수의 “숫자”, 신실한 성도들의 신앙체험, 소위 한국교계를 대표한다는 분들 중에서의 영향력, 크고 작은 행사와 운동에 있어서 ‘장로교단’의 핵심적인 역할 때문에 “한국장로교인들”은 자신들이 소속된 단체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를 가질 수 있을 것 입니다. 이러한 배경 아래 “한국장로교단”이 “정통교회”를 자처하며 수많은 ‘사이비 이단'(?)을 만들어 내는 주체의 위치에 서 온 것이 지금까지의 현실입니다.

그러나 제 깊은 속엔 “한국의 장로교인들”이 하나님이 그어 놓으신 한계를 벗어나 하나님이 지극히 싫어하시는 ‘교만’의 자리(벧전5:5)에까지 나아가려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습니다. 모든 지체들이 다 고유의 특징과 한계가 있는 것이 성경이 말하는 ‘그리스도의 몸'(교회)의 특징입니다(롬12장, 고전12장). 그럼에도 “장로교인들의 신학과 교리와 실행이 모든 다른 그리스도인들의 이단성을 판단하는 척도가 된다” 는 생각을 한다면 이것은 교만입니다(실제로 장로교단이 이단이라고 하면 한국 교회 내에서 이단이 되는 것이 그 동안의 관례였고, 이단 정죄에 있어 ‘한기총’의 이름으로 활동을 하게 된 것은 극히 최근의 일임).[/note]

local church그렇다면, 어떤 근거로 이런 말을 할 수 있습니까? 다음과 같은 이유입니다.

1. 16세기 종교개혁 이전 까진 ‘장로교파’라는 것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 역사는 1세기부터 지금까지 면면히 흘러 내려오고 있지만 ‘프로테스탄트’들이 천주교에 반기를 들고, 다른 노선을 ‘공식표명’한 것은 종교개혁 이후입니다. 혹자는 ‘장로교의 교리’는 그 이전부터 성경에 있어왔다고 항변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사실이더라도, 성경엔 ‘장로교단(파)’는 없습니다. 다만 주님의 몸인 ‘교회’가 있을 뿐입니다. 이에 대해 한 장로교 소속 학자의 말을 들어보겠습니다(이 글을 쓰신 분은 장신대학원 출신의 한국복음신학연구원 학장인 손병호 박사임).

“장로교회가 아무리 성서적이고 역사적이고 신학적이고 민주적이어도 장로교회가 모든 교회의 근원이나 근본은 아닌 것이다. 모든 교회의 근본은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인 것이다. 장로교회는 하나의 교파교회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를 전제로 하는 교회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를 선재로 하는 교회이다. 이것을 잊으면 안 되는 것이다.”(교갱협, 오늘의 한국장로교 정치제도 이대로 좋은가, 도서출판 엠마오, 1998, 112-113쪽)

2. ‘교인숫자’로만 따질 일이 아닙니다. 교인 숫자에 있어서 “한국장로교단”의 상대적 우세는 한국 특유의 현상일 뿐입니다. 이것이 전세계적인 현상일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은 착각일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기독교국가인 미국의 경우 1억이 넘는 전체인구 중에서 재미 한인과 순수 미국인을 합친 전체 장로교인 숫자가 400만 명이 안 된다고 합니다. 한편 침례교인들은 2천 5백만 명이 넘고, 루터 교인들도 800만 명이 넘습니다. 이런 통계를 볼 때, 장로교인들의 숫자는 결코 많은 것이 아닙니다. 더구나 우리 나라에서의 장로교단 자체의 분열 현상, 성도들의 거듭남의 확신 정도 등을 따져가기 시작하면 그 숫자는 얼마나 줄어들 것인지 아무도 모를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국에서 장로교단의 외형적인 숫자가 많기 때문에, ‘장로교단’이 당연히 세계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을 대변하는 “정통교회’로 간주될 수는 없습니다.

3. 장로교의 신학(캘빈 신학)이 성경의 모든 계시를 다 포함하 고 있지는 않습니다. 장로교 신학 안에 하나님의 주권, 은혜, 언약, 속죄, 성도의 견인 등 많은 진리항목들이 포함되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성령론’, ‘그리스도를 주관적으로 체험함’, ‘요한계시록 강해'(칼빈은 요한계시록 주석을 쓰지 않았음)에 있어서는 부족함이 있다고 보입니다. 즉 ‘사람 밖에 계신 하나님'(객관적 하나님)을 가르치고 있을지는 모르나, 사도 바울이 강조한 ‘사람 안에 계신 하나님'(주관적 하나님)에 대해서는 많은 부분이 “한국 장로교인들”에겐 미 개척분야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한국교계 내에서 일어난 ‘이단시비’의 상당부분이 이러한 장로교신학의 한계 때문에 빚어지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즉, 장로교 신학의 한계 안에서 다른 교단의 신학을 바라볼 때 일치하지 않은 부분들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나와 일치하지 않아서 이단이라면 피차에 다 이단이 되어 온 땅에 이단만 충만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불완전한 ‘장로교 신학’은 이단판별의 절대기준이 될 수는 없습니다. 절대기준이라면 그 결정이 상황에 따라 변하지 말아야 할 것인데, 장로교측의 태도는 그렇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한 예로, 저간의 배경에 대해 많은 말이 있긴 하지만, 외견상 조 용기 목사의 신학을 처음에는 ‘사이비’로 정죄 했다가, 나중엔 오순절신학의 특수성으로 인정하여 ‘사이비성’을 풀어준 것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4. ‘한국장로교단’은 세계 장로교단과 크게 다를 만큼 빗나갔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단순히 장로교단이 아닌 ‘한국장로교’라는 명칭을 의도적으로 사용한 것은, ‘한국장로교단’엔 통상 장로교교리의 대부라고 할 수 있는 ‘칼빈’의 가르침과 다른 교리와 실행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원인은 한국 고유의 배경(샤머니즘, 기복신앙, 유교적 권위주의…)이 섞인 부분도 있고, 장로교단을 인도하는 분들의 신학적 배경이 다양하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됩니다. 즉 한국의 토착적인 요소에 독일계통의 신학, 화란 계통의 신학, 미국계통의 신학적 배경이 큰 편차를 보이며 한국 장로교단에 투영된 것입니다. 이에 대해 총신대학원 정 일웅 교수가 ‘한국교회의 바람직한 구조변혁’이란 제목으로 쓴 글을 소개해 보겠습니다.

“원래 장로교회는 지역을 전제하여 복음을 전파하고 개 교회를 세우는 ‘지역중심의 교회제도'(Local Church Style)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런데 실제로 한국교회는 이제 지역교회로서의 성격은 거의 사라진 형편에 처하여 있으며, 이러한 상황에서 장로교회의 제도와 행정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가치를 규명하기가 매우 어렵게 되어 버렸다. ‘한국장로교회’는 더 이상 세계 장로교회와 그 동질성을 확인하기가 힘들 정도로 바뀌어졌다… 실제로 한국사회에 현존하는 “한국장로교회”는 수십에 이르는 군소 교파로 나누어져 있으며, 교회가 분열된 관계에서 서로가 경쟁 아닌 경쟁의 상대가 되고 있는 것이다… 교파중심의 교회구조는 현재 한국교회가 지닌 약점이 아닐 수 없다… 오늘에 와서 또 하나 우리 한국 교회 모두의 실제적인 고민은 하나님이 한 분일 뿐 아니라 그리스도도 한 분이시며, 성령도 하나이신 성경적 이해를 따를 때, 지상에 그리스도의 교회는 하나가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프로테스탄트의 후예들로서의 “한국장로교회”는 문제가 아닐 수 없다…”(한국교회문제연구소, 한국교회의 갱신과 성령, 1995, 한국로고스연구원, 69,71쪽).

5. 장로교단 자체 내에서도 공개적으로 “이단”시 된 교단들이 있습니다. 실제로 현대종교 게시판의 글들을 보면, 기장 측이 예장 측을 이단시했고, 기장 출신의 대표적인 목사님들에게 이단성이 있다는 지적들이 있습니다. 또한 신사참배를 거부한 쪽이 ‘통합교단측’을 이단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교리적인 문제뿐 아니라, 장로교단 소속 목회자들의 윤리적, 도덕적인 약점들이 거론되고 있습니다.

6. 타 교단 소속 단체나 개인들이 책자들을 통해 ‘장로교신학'(캘빈 신학)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장로교인들에게 ‘캘빈신학’ 또는 이에 기초한 ‘웨스트민스터신조’, ‘기독교강요’는 성경 다음으로(일부 사람에게는 실제로 성경 이상으로) 중요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장로교의 신학적 뿌리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시각도 만만치 않습니다. 실제로 예장 합동 측이 ‘이단’으로 선언한 말씀보존학회는 적어도 두 권의 장로교 신학을 바판하는 책자를 내었습니다. 하나는 ‘극단적 칼빈주의의 이해'(이재명, 말보회, 1996년, 약 500쪽의 방대한 분량임)이고, 다른 하나는 ‘칼빈주의의 바른 이해-칼빈주의는 이단교리이다’입니다. 장로교단과 ‘말씀보존학회'(침례교단을 배경으로한)가 서로 이단이라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결교 계통의 비판 책자도 있습니다. 즉 서울신학대학을 졸업한 심상용 목사가 쓴 “칼빈주의 예정론, 왜 철회되어야만 하는가?”(말씀의 샘터사, 765면)라는 책이 그것입니다. 저자는 그 책에서 ‘칼빈주의 예정론이라는 거대한 산맥이 여지없이 무너져 내리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 칼빈주의 예정론(이에 기초하여 세워 진 장로교)은 교회신앙의 근거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하고있습니다. 물론 캘빈 신학을 비판하는 해외자료도 많이 있습니다.

이것들은 성경의 진리이외의 ‘모든 신학'(장로교신학을 포함)은 다 상대적이며, “절대 기준”이 아님을 말해 줍니다. 그런데 한국교회를 대표한다고 자부하는 장로교인들(특히 이단 판정을 하는 분들)은 자신들이 듣고 배워 익숙한 신학이 ‘절대기준’인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 때가 있습니다.

이상에서 볼 때, 한국 교회들 안에서 ‘장로교단’의 위치가 중요하긴 하지만 ‘절대기준’이 될 수는 없음을 보았습니다. 우리가 이 시대에 한국교계 내에서 볼 수 있는 분열과 정죄와 세상과의 타협과… 이런 것들은 사탄을 기쁘게 하고, 주님 그리고 교파를 초월하여 ‘신실한 성도들’의 마음을 아프게 할 뿐입니다. 한국 교회는 지금 어디를 향하여 가고 있는 것입니까? 국내 그리스도인들의 다수를 차지하는 ‘장로교인들’은 이런 현실에 대해 살아 계신 하나님 앞에서 더 큰 책임이 있다는 생각을 해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그렇다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며, 한국교회들(장로교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원하심은 과연 무엇입니까?local church

 첫째로, 선택된 백성인 ‘이스라엘’도 버리셨던 공의의 하나님(마21″23,43)이 ‘장로교인들’도 제켜 놓을 수 있으시다 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자신은 ‘장로교단, 정통교단, 장자교단’에 속했으니 하나님의 심판대 앞(롬14:10)에서도 안전할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잠에서 깨어나도록 도와 줘야 합니다(엡5:14).

둘째로, 주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요10:10)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생명”이며 어떻게 하면 이 “생명”을 얻고, 더 풍성히 얻을 수 있는지(빌3;8)를 알려달라고 주님께 간구 해야 합니다. 십자가의 구속도 중요하고, 죽어서 천국 가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이 땅에 사는 동안 그리스도인들이 주목해야 할 것은 “생명'(Zoe)을 살고(빌1:21, 골3:4), 생명(요11:25, 요일5:11-12)을 전하는 것이 아닙니까? 생명공급이 없는 전도, 생명공급 없는 양육과 성경공부(요5:39-40), 생명공급 없는 설교, 생명공급 없는 각종 봉사와 활동이 ‘나무와 짚과 풀’로 태워질 수 있음(고전3;12)을 우리 모두는 경고 받아야 합니다.

셋째로, 이 시대에 성령이 교회들 안에서 ‘이기는 자들’을 부르시는 음성을 듣도록 서로 격려하고 일깨워야 합니다. 어차피 어둠이 짙었고, 은밀한 죄와 현란한 세상과 고집 센 자아를 처리하지 못하고 오히려 붙잡는 ‘크리스천들’이 있는 한, 모든 믿는 이들이 이 시대에 생명의 성숙에 이르지는 못할 것임을 주님도 아십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일곱 교회들 안에서 ‘이기는 자들'(계2:7, 11,17, 26, 3:5, 12, 21)을 부르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이기는 자인지, 어떻게 하면 이길 수 있는지… 이러한 것들이 우리의 간절한 기도 제목이 되고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합니다.

넷째로, 교만하지 않도록 자신을 더 낮추고, 하나님을 향하여 그리고 그리스도의 몸의 모든 참된 지체들을 향하여 마음을 더 열고, 더 넓혀야 합니다(고후 6:11-13). 하나님이 받으신 지체들은 다 받을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합니다(롬14:4).

마지막으로, 종교개혁의 시작 때처럼, “오직 성경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사람이 만든 전통’으로 ‘하나님의 계명(말씀)’을 범하지 말라(마15:3)는 주님의 경고가 ‘현재의 한국 장로교단’ 내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 지를 심각하게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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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 thought on “장로교단 소속 성도님들께

  1. DCP Korea Post author

    한국의 장로교인들이 하나님이 그어 놓으신 한계를 벗어나 하나님이 지극히 싫어하시는 교만의 자리에까지 나아가려는 것을 우려하는 한 지체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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