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계에 닫힌 핵심진리 – 『맏아들』-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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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 note_color=”#f9fedf” text_color=”#333333″ radius=”15″]4. 지금까지 우리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비밀’이시며(골2:2), 삼위는 각 고유성을 가지고 구별되나 상호내재 하심으로 결코 분리되실 수 없으며, 신약 이전까지는 오직 ‘하나님'(God)(요4:24) 이셨지만, 성육신 후로는 하나님은 ‘하나님 사람'(God-man)이 되셨음을 보았습니다.

 이제 주님의 ‘신성’의 면에는 어떤 변화도 없다는 전제하에, ‘맏아들’에 관련된 핵심구절들을 통해 하나님이 어느 날 입으신 ‘육신’과 이 ‘인성’이 부활시점에서 어떤 상태에 있게 되었는지를 몇 차례에 걸쳐 살펴 볼 것입니다. 이것은 생명에 의한 우리의 유기적인 구원과 관련하여 매우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입니다(롬5:10). 또한 앞으로의 글들은 ‘하나님 사람'(God-man)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시점’에서의 ‘인성방면’을 중점적으로 보게 될 것입니다.[/note]

local church (1) 사도행전 13장 33절의 ‘오늘’은 성육신이 아닌 ‘부활시점’입니다.

행13:33은 ‘곧 하나님이 예수를 일으키사 우리 자녀들에게 이 약속을 이루게 하셨다 함이라 시편 둘째 편에 기록한 바와 같이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너를 낳았다] 하셨고'(Thou art my Son, this day have I begotten thee)라고 말합니다. 위 말씀은 시편 2:7의 인용이며 같은 내용이 히1:5에서도 인용되었습니다. 위 본문에서 ‘아들’이 ‘예수그리스도’를 가리킨다는 데는 이의가 없을 것입니다. 문제는 ‘오늘'(This day)이 ‘성육신’ 시점인지 아니면 ‘부활’시점인지를 결정하는 일입니다. 만일 위 날이 성육신의 때를 말한다면 새로울 것이 없지만, 부활의 날을 가리킨다면 예수 그리스도에게 두 번의 출생이 있다는 말이 되며 나중의 출생은 과연 무슨 의미를 갖는지가 규명되어야 할 것입니다.

어떤 분은 ‘오늘’을 성육신의 때로 보시지만 전체문맥을 보면 이것은 무리한 해석입니다(박만수 외, 증거, 도서출판 안티오크, 1993, 170쪽). 오히려 ‘오늘’을 ‘부활 시점’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즉 사도행전 13장 이후는 사도 바울 일행의 이방 땅의 사역을 다루는데, 사도 바울은 행13:13-43에서 성육신이 아니라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전파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33절의 ‘하나님이 예수를 일으켰다'(he had raised up Jesusagain)는 말씀은 ‘오늘’이 ‘부활시점’임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저명한 신약학자인 조지 레드도 그가 쓴 ‘부활론’에서 다음과 같이 위의 해석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부활사건을 시편 2편의 성취로 보면서 그것을 깊이 생각하고 있다 :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바울의 이러한 선포는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예수님의 부활에 모두 그 근거를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부활론, 기독교문서선교회, 1983, 50쪽).

 (2) 부활 안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맏아들로 출생하셨습니다.

위에서 본 것처럼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또 하나의 출생’으로 말합니다. 즉 그분은 첫 출생인 마리아에게 나심으로 사람의 아들(인자)이 되셨고 두 번째 출생인 부활 안에 나심으로 하나님의 (맏)아들이 되셨습니다. 이런 말은 ‘우리 주님은 영원부터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신가?’라는 의문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렇습니다. 요한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분이 영원히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매우 많이 강조하며 이것은 변치 않는 진리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신약에 의하면 하나님의 아들 되심은 독생자(삼위의 제2격)의 방면과 많은 형제들을 가지신 하나님의 맏아들의 방면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독생한'(only begotten)이란 말은 하나님이 유일한 한 아들만 가지셨음을 가리킵니다. 그리스도는 영원히 하나님의 유일한 독생자이십니다(요1:18, 3:16). 신격의 두 번째이신 아들 하나님(신성)은 그분의 영원한 신분이며 사람은 누구도 이러한 신격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이 방면에서만 본다면 하나님에게 둘째, 셋째, 또는 많은 아들들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맏아들이란 말도 어울리지 않는 표현입니다. 즉 독생자는 ‘신성만 가지신’ 삼위의 제 2격이신 아들 하나님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또 다른 관점에서 그리스도가 ‘맏아들’이심을 말하고 있습니다(롬8:29, 히1:6). 이것은 앞서 본 ‘독생자’의 방면이 아니라, ‘신성’과 부활시점에서 높이 올려진(uplifted) ‘인성’을 가지신 예수 그리스도(롬1:4)를 가리키는 것-이 부분은 다음 글에서 자세히 다룰 것입니다-입니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본다면 죄와 허물로 죽었던 우리는 예수와 함께 죽었을 뿐 아니라 또한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여 지금 하늘에 있습니다(롬6:6, 엡2:5-6). 그러므로 주님은 히브리 서에서 거룩케 하는 자(맏아들)와 거룩케 함을 입은 자들(많은 아들들)이 다 하나(아버지 하나님)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기를 부끄러워 안 한다고 말씀하십니다(히2:11).

이러한 주님의 태도는 (지방)교회 성도들이 서로 ‘형제 자매’라고 한다며 비판하는 어떤 분들과는 크게 다르십니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볼 때, 우리는 그분의 부활 시점에서 그리스도의 많은 형제들이 되었습니다(요12:24, 벧전1:3). 또한 우리는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처럼 신격은 가지지 못하지만 주님의 몸으로서 맏아들이신 주님과 동일한 신성한 생명과 본성을 가지고 한 새사람을 이루고 있습니다(엡2:15).

즉 맏아들이신 주님은 [경배 받는 ‘신격’]과 ‘신성’과 ‘높여진 인성’을 가지고 계신다면,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자녀들이요 다른 면에서 그리스도의 많은 형제들인 우리는 [경배의 대상이 되는 신격은 아니나- 이것은 독생자의 고유권한이심] ‘신성한 생명과 본성’ 그리고 ‘변화되어 가고 있는 인성’을 가지고 있습니다(요1:12, 벧전1:4,.롬12:2, 빌3:21). 존귀한 주님의 몸의 지체들로서…

[note note_color=”#f9fedf” text_color=”#333333″ radius=”15″] 5.  앞의 글에서 ‘독생자'(the only begotten Son, 요1:18)는 ‘신성’만 가지신 삼위의 제 2격 하나님이시라면, 많은 형제들이 있는 ‘맏아들'(the first-born, 롬8:29)은 ‘신성’과 ‘높이 올려진 (인정되신) 인성'(롬1:4)을 가지신 하나님의 아들이 되신 것임을 말씀드렸습니다. 사실 한국교계에서는 이러한 깊은 성경 진리가 일반적으로 가르쳐진 적이 없기 때문에 이런 설명을 꼼꼼히 듣지 않으면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오해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note]

 (1) 예수님이 부활 후 ‘하나님의 맏아들이 되었다’면, 그 후에는 더 이상 ‘사람의 아들'(인자)는 아니라는 말인가?local church

이에 대한 답변은, 예수님은 성육신 하신 이후 부활, 승천, 재림 심지어 영원토록 ‘인자'(사람의 아들)이시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주님이 부활 후에도 뼈와 살을 가진 사람으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고(눅24:39), 승천 후에도 스데반에게 인자로서 보이셨으며(행7:56), 재림 시에도 인자로서 오실 것임을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마26:64). 이뿐 아니라 주님은 영원토록 인자 즉 하늘과 땅을 잇는 사닥다리이실 것입니다(요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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