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경륜 적용하기-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5.2

지방교회
[note note_color=”#f9fedf” text_color=”#333333″ radius=”15″]이것을 성경 본문을 중심으로 단락을 나누어 보자면,

1) 노예 됨(출 1장)
2) 구속, 구원됨(2장-15:21)
3) 인도 됨(15:22-18장)
4) 계시 받음(19-34장)
5) 성막 건축(35-40장)이 될 것입니다.

이제 각 항목 별로 조금씩 살을 붙여 보겠습니다.[/note]

1. 애굽에 살면서 바로의 압제 아래 노예됨(1장)

지방교회이스라엘 백성들이 요셉이 총리대신 하던 시절엔 애굽에서 대접받으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출애굽기가 시작될 즈음엔 요셉도 죽고 그를 아는 왕도 죽었습니다. 오직 그냥 먹고 살고 목숨을 부지하기 위하여 감독들의 지시아래 바로의 국고성을 짓는데 동원될 뿐이었습니다. 그들은 무거운 짐을 지고 괴로와 했으며(1:11), 애굽 사람이 그들을 학대하고 괴롭게 하는 것이 여호와께도 보였습니다(3:9).

사람이 살다보면 괴로운 일도 있고 힘든 일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힘들여 인생을 쏟아부어 한 일이 과연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애굽은 세상이고 바로는 세상의 임금인 사탄을 의미하는데(요12:31)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의 수고는 다 이 처럼 바로의 국고성을 건축하는 일일 뿐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세상 나라는 장차 바벨론 성으로 발전되었다가 일시에 무너져 멸망할 한 갖 티끌에 불과합니다(단2:35). 자신이 한 일이 언젠가는 흔적없이 사라질 허무에 불과하다면 그것을 위해 허비된 시간들도 아무 가치가 없는 것이 되고 말 것입니다.

사실은 오늘 날 현대를 사는 사람들의 방황과 괴로움은 육신이 힘든 것도 있지만 심리세계에서 겪는 갈등이 더 그들을 괴롭게 합니다. 이것 저것을 가져보고 맛보지만 그 깊은 속에 있는 공허와 허무함은 가시지 않음으로 그것이 그들을 더 괴롭게 하는 것입니다. 마치 파스칼이 말했던 사람 안의 깊은 곳의 그 채워지지 않는 공간이 그들을 괴롭게 합니다. 일본에서 노벨상을 받을 만큼 유명했던 한 소설가는 자살로 자신의 생을 마감하기도 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런 상식적인 반문을 해 볼 수 있습니다.

아니 약 3500년 전에, 그것도 이역 만리 이집트 땅 부근에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일어났던 이야기가 21세기에 동방의 나라에 살고 있는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맞습니다. 다만 옛사람의 영역에서만 본다면 출애굽기는 남의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영적인 방면에서 본다면 그것은 우리 모두의 이야기입니다.

즉 신약의 말씀을 따라 말하자면, 허물과 죄로 (우리의 영)이 죽어 있는 사람은 (엡2:1)은 지금 한국 땅에 살고 누구 하나 뭐라 하는 사람이 없어도 영적인 시각에서 본다면 그는 애굽에 사는 사람이며 바로의 노예상태에 있는 것입니다.

이들의 특징은 이 세상의 유행을 따라 살며 (본인들은 눈치채지 못하지만) 공중의 권세 잡은 자의 지시아래 그들 안에서 역사하는 영을 따라 불순종의 아들들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들은 다른 것에는 순하고 말을 잘 듣다가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는 이상하게 이유를 대고 토를 달고 삐딱하게 나갑니다. 이들은 하나님과 상관없이 다만 육체의 욕심을 따라 자기 좋은대로 생각하고 자기 좋은 대로 결정하고 자기 좋은 대로 살아갑니다.

그러나 사실은 이 모든 것이 사탄의 영향력 아래 있을 뿐임을 알지 못합니다. 그 중에는 악한 것도 있지만 매우 선하고 심지어 윤리적으로 칭찬받을 만한 것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깊은 속에서는 참 만족과 안식이 없고 공허하고 참 자유함이 없습니다. 앞서 소개했던 컴퓨터 전문가 그 형제님이 돈 많이 벌고 미국 사람들 상대로 교육시키고 남 부러울 것 없는 집안이지만 사는 목적을 몰라 방황했던 바로 그런 상태입니다.

오! 우리가 다 한 때는 이런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눈이 열려 구속과 구원을 맛보게 하시니 얼마나 감사한지요.

 2. 모세를 통해 바로의 압제에서 벗어나고 구속과 구원을 체험함(2-15장)

출애굽기 2장부터 주욱 넘겨 보니까 등장인물들이 여럿 나오더군요. 그러나 그 중심인물들은 역시 모세와 바로였습니다. 물론 모세의 배후에는 여호와 하나님이 계셨지요. 이 단락의 상당 부분이 바로의 압제로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을 건져내려는 모세의 역할에 대해 할애 되었습니다.

이 대목도 그냥 보면 과거지사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영적인 의미를 따라 모세를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주 예수님의 예표로, 바로는 세상 임금인 사탄으로 본다면 그 의미가 한층 새롭습니다.

출12:7은 (어린양의) ‘그 피로 양을 먹을 집 문 좌우 설주와 인방에 바르고’라고 하고 13절은 ‘내가 그 피를 볼 때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고 말합니다. 여기서의 피는 어린양이신 주 예수님의 구속의 피를 상징합니다. 8절은 ‘ 그 밤에 그 고기를 불에 구워 무교병과 쓴 나물과 아울러 먹되’ 라고 합니다. 여기서의 양고기는 우리 안에 생명으로 들어 오신 주 예수님을 상징합니다(골3:4, 요6:57).

즉 예수의 구속하는 피와 예수의 부활 생명만이 우릴 바로의 학정에서 그리고 애굽에서 구출할 수 있으십니다. 홍해를 건너와 구원의 노래를 부르는 출애굽기 15장도 역시 영적으로 볼 때 우리의 체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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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 thought on “하나님의 경륜 적용하기-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5.2

  1. DCP Korea Post author

    신약의 말씀을 따라 말하자면, 허물과 죄로 (우리의 영)이 죽어 있는 사람은 (엡2:1)은 지금 한국 땅에 살고 누구 하나 뭐라 하는 사람이 없어도 영적인 시각에서 본다면 그는 애굽에 사는 사람이며 바로의 노예상태에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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