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 신학 측과의 대화(4) – 계시와 조명

개혁신학_지방교회


개혁 신학 측과의 대화- 계시와 조명

 

‘계시(revelation)는 사도직의 종결과 함께 완성되었다’는 것이 개혁신학의 입장입니다.[1]  여기에는 ‘계시’는 성경을 구성하는 어떤 것인데, 성경 66권이 이미 완성되었으니 추가 계시는 있을 수 없다 는 사상이 담겨 있습니다.[2] 이런 연유로 개혁신학 측은 누가 성령의 빛비췸으로 성경을 참되게 알게 된 것을 ‘계시’라고 표현하면, 그것은 ‘조명’(illumination)일 뿐 계시가 아니라며 바로 잡으려고 합니다.[3] 이처럼 계시와 조명을 구분하는 개혁신학의 독특한 이해로 인해, 한국 교계 내에서 계시라는 용어를 쓰는 사람들은 본의아니게 경계의 대상이 되거나 심지어 이단시비에 휘말리는 경우까지 생기고 있습니다.[4]

이 글은 이러한 현안을 재조명함으로써, 계시와 관련된 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해석하고 적용 하는 길을 모색하기 위한 것입니다(딤후2:15).

 1. 개혁신학 내의 이견.

개신대학원대학교 나용화 총장님은 “계시종결론은 예수그리스도의 영원한 선지직 뿐 아니라 성령의 계시 행위를 부정함으로써 성령의 역동적인 계시 활동을 제한하기 때문에, 사실상 그리스도의 교회를 죽이는 것”이라고 말합니다[5]. 그는 이어서 “성경 이외의 다른 계시를 인정하는 것이 아님” 을 분명히 한 후, “오늘날도 말씀의 사역자들이 성경을 가지고 구원의 비밀들을 선포하여, 즉 계시하여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어 구원을 얻게 한다”고 했습니다.

위 말은 한 마디로  개혁신학이 말하는 ‘성령의 조명 ‘을 ‘계시’ 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미국 웨스트민스터 신학교를 졸업한  구요한 목사님도 “많은 개혁, 보수주의자들 예를 들어, D. A. 카슨, 웨인 그루뎀, 번 포이트레스 [6]등이 지적하듯 성경 자체는 계시라는 말을 ‘그렇게 좁은 의미의 전문 용어’[7]로 사용하지 않고 있다”고 말합니다[8].

이처럼 같은 개혁신학 진영 안에서도 이견이 존재하는 ‘계시와 조명을 엄격히 구분하는 원칙’을 외부인 모두에게 절대기준처럼 지키라고 요구하는 것은 무리일 수 있습니다.

2. 계시에 대한 성경의 용례.

다음 성경 본문들도 개혁신학 쪽의 ‘성령의 조명’의 개념을 ‘계시’로 표현할 수도 있음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여러분에게 주셔서 하나님을 온전히 알게 해 주시고”(엡1:17)[9]

“이 비밀은 영원부터 모든 세대에 걸쳐 감추어져 있었으나, 이제는 그분의 성도들에게 나타났습니다.”(골1:26)[10]

”내가 그분의 아들을 이방인들에게 복음으로 전파하도록 하시려고, 그분의 아들을 내 안에 계시하기를 기뻐하실 때에”(갈1:16)[11]

계시라는 헬라어 단어는 이 외에도 마 11:27, 눅 10:22, 고전14:6, 26, 30, 벧전 1:12, 갈1:12, 2:2, 3:23, 롬16:26, 계1:1 등에서도 사용되었습니다.

3. 워치만 니, 위트니스 리와 계시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로 대표되는 소위 지방 교회들이 만든 자료들 안에도 ‘계시’라는 말이 자주 등장 합니다. 예를 들어 워치만 니 전기를 다룬 책 제목은 <금세기 신성한 계시의 선견자 워치만 니>[12] 이고, 그의 저서들 소개 문구 중에는  “그가 남긴 말씀들은 영적인 계시의 풍성한 보고(寶庫)로 남아”[13] 라는 표현도 등장합니다. 또한 워치만 니의 동역자인 위트니스 리는 ‘신성한 계시에 따른 건축자’[14] ‘로 불리우기도 합니다. 이것은 계시와 조명을 엄격히 구분하는 시각으로 본다면 경계심을 가질 만한  표현들입니다.

그러나  위 두 성경 교사들은 성경 66권이 이미 완성되었고 그 성경은 무오함을 확고하게 믿고 있습니다.[15]  따라서 위에서 사용된 ‘계시’라는 말은 성경 66권에 ‘추가된’ 어떤 것이 있다 는 의미가 아닙니다. 대신에 ‘신화(神化)’처럼 초기교회 때 이미 밝혀졌다가 천년 암흑기 동안 잃은 바 되었던 진리들이 이들을 통해 다시 회복되거나, 또는 ‘하나님의 경륜’(딤전 1:4), ‘사도들의 가르침’(행2:42), ‘새 예루살렘’(계21:2)처럼 역대로 밝혀지지 않았던(또는 강조되지 않았던) 진리 항목들이 더 깊고 풍성한 방식으로 드러나게 된 것을 가리킵니다[16].

4. 개혁교단 특수성과 이단시비

위에서 보았듯이 계시와 조명을 엄격히 구분하는 것은 개혁교단(장로교단)의 특수성입니다. 따라서 해당 교단 자체 구성원들에게 이런 구분을 적용하는 것은 존중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기준을 절대시하여 그와 다른 관점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을 함부로 이단시 하는 것은 한 몸된 교회(엡4:4) 안에 심각한 갈등과 분열을 야기시킬 수 있습니다.

실제로 최근에 한국기독교총연합회는 “특정 교단의 자의적이고 무리한 이단 판정을 막겠다”는 취지의 성명서를 일간 신문에 발표했습니다.[17] 그 핵심 내용은 “장로교 또는 칼빈주의와 어긋나면 이단”이라고 했던 이단정죄 관행을 바로 잡겠다는 것입니다. 사실 정통 교리는 곧 칼빈주의 교리 또는 신조이고 이와 다르면 불건전한 단체 내지는 이단이 되는 구도는, “웨슬리안주의, 복음주의, 오순절주의, 오중 복음 등 다양한 신학적 패턴 속에 삼위일체 하나님을 섬기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으며 성령님의 인도를 받는 보수신앙 공동체” 를 자임하는 ‘한기총’ 또는 유사한 여타 연합 기구의 존립과도 대치됩니다.

이러한 모순을 해결하려면 지금처럼  특정교단 교리 중심의 이단 정죄가 아니라  전체를 아우르는 “객관적이고 체계적인 이단판정 기준”을 세운 후, 그 틀 안에서  몸된 교회 내의 질서를 새롭게 확립 할 필요가 있습니다.[18]

5. 결론

한국 내에서 개혁신학을 신봉하는 교단들은 자체 ‘교단 교리’를 타 교단 성도들에게 무리하게 적용하지 않도록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특히 이 글이 다룬 ‘계시와 조명’ 은 비록 ‘계시’라는 용어를 쓰더라도 사실상 ‘조명’에 해당되는 경우는 문제삼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 66권의 권위가 어떤 형태로든 훼손되는 방식으로 ‘계시’라는 용어가 사용된다면, 경계하고 또 단호하게 분별시켜야 할 것입니다.[19]


[1]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1장  제1항에는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에게 자신의 뜻을 직접 계시해 주시던 과거의 방식들이 지금은 중단되었다” 라고 되어 있다.

[2] https://www.facebook.com/wansook.kim/posts/207824789349534 (유태화 교수님의 계시관 소개글)

[3] http://www.dbpia.co.kr/Journal/ArticleDetail/129239 (신학지남, 계시와 조명 관련 논문)

[4][4] http://www.christiantoday.co.kr/view.htm?id=248863%C2%A7ion_code=pd&scode=pd_02  (전도총회 영입관련 나용화 총장님의 관련기사)

[7]  “성령의 감동에 의해 기록된 성경에 대해서만 (특별)계시라는 말을 사용”하는 존 맥아더 식의 계시관.

[8]   http://cluster1.cafe.daum.net/_c21_/bbs_search_read?grpid=1J11e&fldid=9z7T&datanum=5727 (구요한 목사님, ‘존 맥아더의 <무질서한 은사주의>를 비판한다.’)

[9] 바울이 ‘지혜와 조명의 영’(원문은 ‘푸뉴마’로서, ‘영’으로 번역함이 옳다)이라고 말하지 않음을 주목하라.

[10] . 동일 본문이 엡3:5에서는 “거룩한 사도들과 신언자들”에게 나타났다고 말하나, 여기에서는 “성도들에게” 나타났다고 말한다. 감취었던 비밀이 나타나는 것이 계시임을 인정한다면, 이러한 계시는 성경 기자들뿐 아니라 일반 ‘성도들’에게도 주어질 수 있음을 위 본문은 잘 말해 주고 있다.

[11] 위 본문을 바울 개인의 체험에만 국한시킬 필요는 없다.

[12] http://www.sejongemall.com/product.php?productid=23938 (신성한 계시의 선견자라는 문구를 주목하라.)

[13] http://watchmannee-witnesslee.chch.kr/revelations/index.html (‘새로운 계시’라는 문구를 주목하라.)

[14] http://www.witnesslee.kr/witness-lee/index.html (‘신성한 계시에 따른 건축자’ 라는 문구를 주목하라.)

[15] http://www.mokhoeja.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863 (성경의 무오성을 믿는 고백)

[16] 위트니스 리는 <하나님의 경륜>, <사도들의 가르침>, <신약의 결론-새예루살렘>이라는 제목의 책들을 남겼다.

[17]  http://www.localchurch.kr/10178 http://www.localchurch.kr/10178  (한기총 이단사이비특별대책위 성명서 기사)

[18] 본인이 중심이 되어 (예장 통합 교단을 통해) 약 30여 개 이상의 이단을 양산했음을 자평하는 최삼경 목사님도 지금과 같은 교단 중심의 이단 정죄는 “그 교단의 교리를 기준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음을 시인한다. 그는 아울러 가장 바람직한 대안으로 “(그런 일을 하는) 범교단적인 기구가 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피력한 바 있다( http://www.amen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3633 최삼경, 누가 이단이라고 해야 이단인가?)

[19] 이 글에 인용된 자료들이 현재 다툼이 있는 특정개인이나 단체들을 옹호하는 경향을 가진다고 해서  지방 교회측 역시 그들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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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시(revelation)는 사도직의 종결과 함께 완성되었다’는 것이 개혁신학의 입장입니다.[1] 여기에는 ‘계시’는 성경을 구성하는 어떤 것인데, 성경 66권이 이미 완성되었으니 추가 계시는 있을 수 없다 는 사상이 담겨 있습니다. 이런 연유로 개혁신학 측은 누가 성령의 빛비췸으로 성경을 참되게 알게 된 것을 ‘계시’라고 표현하면, 그것은 ‘조명’(illumination)일 뿐 계시가 아니라며 바로 잡으려고 합니다. 이처럼 계시와 조명을 구분하는 개혁신학의 독특한 이해로 인해, 한국 교계 내에서 계시라는 용어를 쓰는 사람들은 본의아니게 경계의 대상이 되거나 심지어 이단시비에 휘말리는 경우까지 생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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