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방교회 ☆ 이스라엘 성지순례(7)- 헤브론

지방교회 예루살렘 탐방(7)- 헤브론 – 지방교회 진리의 확증과 비평

[note note_color=”#fee8cd” text_color=”#000000″ radius=”16″]☆ 지방 교회☆ (local Church) 이스라엘 성지순례팀(한국35명, 미국9명)은 일반적인 성지순례자나 관광객들과는 달리 성경에 나오는 60여 군데의 지명을 선택하여 역사적으로 성경적으로 고고학적으로 확인하는 작업을 하고자 오랫동안 자료를 준비하였다. 탐방의 질을 높이기 위하여 우리들은 출국하기 전에 2박 3일동안 방문지에 대하여 미리 철저하게 스타디하였다. 우리는 유명한 관광지보다 성경적으로 의미가 있는 곳을 더 많이 방문하기로 하였다. 우리는 15박 16일동안(2012/10/13-28) 이스라엘을 탐방하기 위하여 10월 13일(토) 대한항공 KE957 편으로 이스라엘을 향하여 출국하였다. 우리가 이스라엘을 방문하는 동안 그곳에서 아무일이 없기를 바라면서…[/note]
☆ 지방교회 ☆ 이스라엘 탐방(7) 헤브론

2012년 10월 16일(화)
(창 13:18) 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주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더라
(수 10:36-37) 여호수아가 또 온 이스라엘과 더불어 에글론에서 헤브론으로 올라가서 싸워 (37) 그 성읍을 점령하고 그것과 그 왕과 그 속한 성읍들과 그 중의 모든 사람을 칼날로 쳐서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였으니 그 성읍들과 그 중의 모든 사람을 진멸하여 바친 것이 에글론에 행한 것과 같았더라
(삼하 2:11) 다윗이 헤브론에서 유다 족속의 왕이 된 날 수는 칠 년 육 개월이더라 헤브론믄 아브라함과 조카 롯이 헤어지고 난 뒤 마무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장맠을 치고 여호와를 위해 단을 쌓은 곳이다(창13;18) 고향을 떠나 유목생화을 하던 아브라함은 아내 사라의 장례를 위해 헷족속에게서 막베라 굴을 구입하여 가족 매장지로 삼았다(창23;1-20) 후에 아브라함 자신과 이삭과 리브가 야곱과 레아도 이곳에 장사되었다(창25;9-10, 35;27-29, 49;30-31)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하나님』 메시지 3>
헤브론은 원문에서 교통이라는 뜻이다. 하나님의 집은 생명의 문제이며 교통은 일종의 생활이다. 벧엘을 거치지 않고 헤브론에 거하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는 헤브론이 벧엘 이후에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의 집이 있은 후에야 교통이 있다. 교통은 몇몇 사람이 단체를 조성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집 안에 있는 문제이다. 하나님의 집이 없다면 교통도 없다. 당신의 천연적인 생명이 처리되지 않았다면 결코 교통을 가질 수 없다. 당신의 천연적인 생명이 처리될 때 비로소 당신은 몸 안에 살게 되고 교통을 가질 수 있다. 벧엘(Bethel)은 가나안 땅의 중심과도 같다. 하나님은 아브
라함을 벧엘에 거하도록 거기로 인도하였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벧엘을 떠났을 때 그는 실패했다. 애굽에서 나올 때 그는 하나님에 의해 다시 전에 단을 쌓았던 벧엘로 인도되었다. 아브라함이 그곳에서 안정된 후 하나님은 비로소 그를 헤브론으로 인도하였다. 이것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하나님』 메시지 10>
벧엘은 야곱이 오랫동안 거한 땅이 아니었다. 오직 헤브론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세 사람이 오랫동안 거했던 땅이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세겜을 아는 것처럼 하나님의 집으로 벧엘을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집에 대한 지식 안에 살아야 할 것이 아니라 매일매일 교통 안에 살아야 한다.
그때부터 야곱은 자기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없고 모든 것을 교통 안에서 행해야 하고 교통이 없이는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보았다. 육체가 처리되지 않은 사람은 영원히 교통의 중요성을 모른다. 많은 그리스도인은 모든 것에 있어서 교통할 필요가 없고 하나님과도 교통할 필요가 없으며 하나님의 자녀와도 교통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이렇게 행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의 육체가 아직 처리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하나님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하나님

A. 고대 도시 헤브론

 헤브론은 성경에 등장하는 오래된 도시들 가운데 한 곳인데, 이집트의 소안(Zoan)보다 7년 먼저 건설되었다고 언급된다(민13:22). 이 지역은 아브라함이 정착하기 이전부터 아모리족(Amorites)과 헷족(Hittites) 등 다양한 민족들의 거주지였다(창 14:13, 23:7).

B. 창세기의 헤브론(막벨라 굴) 
 헤브론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 그리고 다윗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어 유대인들에게는 조상들의 영원한 고향으로 인식된다. 헤브론은 창세기에서 아브라함과 관련하여 처음으로 언급되는데, 조카 롯과 헤어지고 난 뒤 ‘마므레 상수리 수풀(oaks of Mamre)’에 이르러 장막을 치고 여호와를 위해 단을 쌓은 곳이다(창 13:18). 고향을 떠나 유목 생활을 하던 아브라함은 아내 사라의 장례를 위해 헷족속에게서 400세겔을 주고 막벨라 굴을 구입하여 가족 매장지로 삼았다(창 23:1-20). 후에 아브라함 자신(창 25:9-10)과 이삭(창 35:27-29)과 리브가, 야곱과 레아도 이곳에 장사되었다(창 49:30-31, 50:13).

막벨라 사원(막벨라 동굴무덤) 앞에서 찰칵!(2012,10,16)_2

막벨라 사원(막벨라 동굴무덤) 앞에서 찰칵!(2012,10,16)_2

C. 출애굽 시대

 B.C. 1490년 전후 시기에 출애굽한 이스라엘 민족은 광야를 거쳐 가나안 땅으로 들어오기 직전 ‘가데스 바네아(Kadesh-barnea)’에 머물면서 가나안 땅을 정탐하게 된다. 이때 헤브론은 열두 정탐꾼이 거쳐간 장소로 등장한다(민 13:22-23). 성경에서 나타난 ‘에스골 골짜기(Valley of Eshcol)’는 헤브론 북쪽의 숲이 울창하고 매우 비옥한 지역을 뜻한다.

D. 여호수아의 정복 전쟁 시기
 이후에 이스라엘 민족의 가나안 정복에 맞서 헤브론 왕 호함은 4명의 왕과 연합하여 기브온(Gibeon)을 응징하려는 전쟁을 일으킨다(수 10:3-5). 왜냐하면 모든 도시가 이스라엘 민족과 맞서 싸우려는 가운데 기브온에 거주하는 백성들만 항복하여 화친했기 때문이다(수 9:3-27). 그러나 이 전쟁에서 연합군은 여호수아가 이끄는 이스라엘의 군대에 크게 패한다(수 10장). 정복 전쟁의 결과, 헤브론은 여호수아에 의해 점령되고(수 10:23-27;36-37), 여호수아는 헤브론을 갈렙의 몫으로 주었다(수 14:13-15) 그러나 이후에 헤브론은 레위 지파의 기업(수 21:11-13)으로, 아론 자손 제사장들인 그핫 족속(Kohathites)이 차지하였으며 살인자의 도피성(수 20:7, 21:13)으로 이용되었다.

헤브론 전경_3

헤브론 전경_3

E. 통일왕국 시대

 헤브론은 아브라함과 족장들뿐만 아니라 다윗에게도 중요한 곳이다. 사울이 다스리던 때, 헤브론 사람들은 다윗에게 우호적이었으며 다윗 역시 시글락(Ziklag)에서 빼앗은 탈취물 일부를 헤브론 사람들에게 보낼 만큼 그들과 매우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였다(삼상 30:26-31). 사울이 죽은 후(B.C. 1000년경), 여호와께서는 다윗을 헤브론의 왕으로 삼으셨으며(삼하 2:1-7) 다윗은 예루살렘으로 수도를 옮기기 전까지 헤브론에서 7년 반 동안 다스렸다(삼하 5:3-5). 다윗이 헤브론에 거하는 동안에 다윗에게 여러 아들들이 태어났으며(삼하 3:2-5), 이곳에 아브넬(Abner)과 이스보셋(Ish-bosheth)을 묻었다(삼하 3:32, 4:1-12). 다윗이 예루살렘으로 수도를 옮긴 이후, 다윗의 셋째 아들 압살롬(Absalom)은 헤브론을 거점으로 삼고 스스로 왕이라 칭하며 다윗에게 반기를 들었다(삼하 15장).

막벨라 사원(막벨라 동굴 무덤)_4

막벨라 사원(막벨라 동굴 무덤)_4

F. 이스라엘 왕국의 분열과 포로기

 유다 왕 르호보암(Rehoboam)은 유다와 베냐민 지파의 땅에 15개의 병거성을 지었는데, 그 중 하나가 헤브론이었다는 사실을 통해 헤브론의 전략적 중요성을 알 수 있다(대하 11:5-12). 남유다 왕국의 멸망으로 바벨론에서의 포로기를 겪고 하스모니안 왕조(마카비 혁명의 결과)를 거쳐 신약시대에 이르기까지 헤브론은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적 배경이 되어왔다.

I. 위치 및 지형 
A. 지명
헤브론은 ‘기럇 아르바(창 23:2)’, 또는 ‘마므레(창 13:18)’라고 불렸다. 헤브론의 옛 이름인 기럇 아르바는 ‘아낙 사람 아르바의 동네’라는 뜻이다(수 14:15). 히브리어로 ‘넷’이라는 뜻의 ‘아르바’와 ‘동네’를 의미하는 ‘기럇’의 합성어로서, 구약 시대에 이 지역에서 동맹을 맺고 연합한 4개 정착지에서 유래된 것으로 본다. 즉, 헤브론은 ‘연합, 동맹’이라는 의미를 지녔는데, 고대로부터 부족적인 연합 운동을 많이 치른 지역이라서 붙여진 지명으로 보인다.

B. 위치
헤브론은 팔레스타인 자치 지역인 ‘웨스트 뱅크(요르단 서안지구)’남부에 위치한 도시로, 예루살렘에서 남쪽으로 30km 정도 떨어져 있다. 해발 927m의 고지대에 위치한 헤브론은 인구 10만의 웨스트 뱅크 최대의 도시이다. 헤브론은 유대 산지에 속하는데, 평균 높이 1000m의 주변의 산지로 인해 산지 속의 평야지대로 불린다. 이곳은 급수원이 풍부하여 포도재배의 최적지로 알려졌으며, 구약 성경에서는 12명의 정탐꾼의 정찰 지역 중 한 곳으로서 정탐꾼들이 포도를 가져온 곳으로 등장한다(민 13:21-23).
헤브론은 세겜에서 실로, 벧엘, 예루살렘, 브엘세바로 이어지는 ‘중앙산지 분수령길(족장의 길)’위에 위치하고 있어, 구약 성경에서 자주 언급되는 역사적으로 유서가 깊은 고대 도시이다. 성경에는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나무, 에스골·헤브론 골짜기, 막벨라 굴 등 여러 장소들이 기록되어 있다.

팔레스타인 영토 분쟁지역 그린라인(1995년 오슬로 협정) 분리장벽 레드라인은 이스라엘이 임의로 설치함_1

팔레스타인 영토 분쟁지역 그린라인(1995년 오슬로 협정) 분리장벽 레드라인은 이스라엘이 임의로 설치함_1

C. 현대의 헤브론
제1차 세계대전 이후(1920년대), 디아스포라(Diaspora)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이주해왔다. 이들은 유대인 공동체를 형성하였으나, 아랍인들과 잦은 마찰을 빚었다(1929년 헤브론 학살 사건). 헤브론은 1967년 6일 전쟁(제3차 중동전쟁) 이후 이스라엘의 영토에 속하게 되었다. 이후 1970년대 유대인 정착촌이 본격적으로 증가하였고, 1972년에는 막벨라 동굴에서 북서쪽으로 약 1km 떨어진 곳에 기럇 아르바라고 부르는 유대인 정착촌을 건설하였다.

1993년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PLO)가 수립되고 웨스트 뱅크(요르단 서안지구)와 가자지구에 대한 자치권을 획득하였다(오슬로 협정). 그러나 양국의 합의에도 불구하고 영토 분쟁은 계속 이어졌고, 헤브론에서도 마찬가지였다(1994년 막벨라 동굴 총기 난사 사건). 이후 1997년 이스라엘은 헤브론으로부터의 철수를 결정하고, 헤브론은 팔레스타인 관할로 이관되었다. 그러나 현재에 이르기까지 여전히 유대인 정착촌 문제 등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갈등의 골은 깊어만 가고 있다

Ⅱ. 유적지 및 관광지

A. 막벨라 동굴 무덤(막벨라 사원, 족장들의 무덤)

1. 유래
헤롯 대왕(Herod the Great)은 헤브론의 막벨라 굴 주위로 다듬은 돌을 사용하여 벽을 세웠다[아랍말로는 하람(haram)이라고 하며, 건축물에 사용된 가장 큰 돌은 7.3m 이상 됨]. 막벨라 동굴 무덤은 길이 30m, 폭 22m, 높이 18m의 건축물로서, 헤롯이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건설했다.
2.막벨라 사원의 역사
헤브론은 로마 제국에 대한 두 차례의 유대인의 반란(AD 66년, 132년)으로 인해 파괴되었고, AD 4세기에 헤브론은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친그리스도교적 정책으로 인해 파괴되었던 도시가 복구되었다. AD 638년 이후 이슬람 제국이 팔레스타인 지역을 통치하면서 헤브론의 막벨라 굴 자리에 이슬람 사원으로 지었다. 이후 십자군 원정 시기에 헤브론은 십자군의 요새로 변모했고, 막벨라 사원은 교회로 개조되었다. 그 후 AD 1185년 살라딘(Saladin)이 헤브론을 점령하고 막벨라 굴 자리에 있던 십자군 교회를 이슬람교의 모스크로 바꾸어 버렸다. AD 1260년 헤브론을 점령한 맘루크 왕조(Mamluk)는 막벨라 사원을 증축하였다. 사원 벽 북동·북서쪽에 이슬람 첨탑(하루 다섯 번 이슬람 기도 시간을 알리기 곳)을 만들어 외부에서 볼 때 완전한 이슬람 사원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그리고 아랍인들은 유대인들에게 사원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고, 다만 사원 동쪽 입구의 일곱 번째 계단까지만 올라가 기도할 수 있도록 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오스만 제국, 영국, 그리고 요르단의 통치 하에서 약 700년 동안 일곱 번째 계단에 서서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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